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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의 의미

이 영화는 2015년에 개봉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논란도 낳은 영화입니다.
이 작품의 이름은 위에 알다시피 '위플래쉬' 
한국말로 번역하면 '채찍질'이라는 뜻입니다.
플래처 교수가 교육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혹은 적당하게 의역하자면 '담금질' 정도 될까요??
이 작품에서 담금질 하는 것은 플래처 담금질 당하는 것은 앤드루 입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과연 플래처 교수의 교육은 교육이라고 볼 수 있는가?
어찌되었던 저런 담금질로 인해 천재가 탄생한 것이라면
그의 교육 방침은 틀린 것이 아니지 않은가?
더 자랄 수 있는 보리를 어째서 밟지 않고 키워낸단 말인가?
플래처의 교육 철학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에 대해 말했습니다.
만약 이 영화를 교육영화로 본다면
플래처와 앤드루의 사제지간을 엿보면서 
'우리는 교육 중에 체벌을 해도 되는가' 혹은 '사람을 심리적으로 몰아부치는 것은 옳은가'
등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람을 훈육하는 영화이지만 
이 영화의 장르가 음악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또 다른 영역으로 작품이 해석 가능하게 됩니다.
플래처가 키우는 학생은 평범한 학생이 아닌 제 2의 찰리파커라고 불리는 '예술가'
이 영화는 드러머라는 예술가를 길러내는 영화인 것입니다.

플래처가 원하는 예술은 광기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키워내려면
약간 미친 사람을 키워야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시점을 바꿔, 앤드루의 시점으로 봐보겠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드럼을 쳤던 앤드루는 자신이 드럼으로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이 플래처에게 차출되어 악단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를 보겠습니다.
매표소 여직원에게 처음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는 앤드루.
이 시점까지는 연애, 즉 통속적인 영역과 예술적인 영역에서의 구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드럼에서 인정받은 자신감이 현실의 자신감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담금질과 플래처 교수의 수업을 통해
서서히 현실을 버리고 예술에 동화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자신의 여자친구와 헤어지며
'현실과 예술은 공존할 수 없다'의 모습이 영화에서 보여지게 됩니다.

 


2. 예술과 현실


사실 영화에서는 예술에 미칠수록 현실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두가지 있습니다. 
바로 '찰리파커'와 '션 케이시'의 이야기 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같이 예술쪽으로 기울게 되는 앤드루의 모습을 보면
비참한 미래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앤드루가 플래처 교수의 틀마저 뚫어버리고 자신의 예술혼을 카네기 홀에서 표출시킬 때,
플래처 교수는 자신에게 반항한 앤드루를 인정하는 눈빛으로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멀리서 바라보던 앤드루의 아버지는 
마치 앤드루를 잃어버렸다는 듯 공허한 눈빛을 보냅니다.
이 영화에서는
플래처는 '예술' 앤드루의 아버지는 '현실'을 의미합니다.
이 처럼 앤드루는 자신에게 상처만을 주는 예술을 잠시 포기하고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최후에는 플래처를 깨부수며 더 광기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연주를 보여줍니다.
플래처는 자신의 커리어를 망쳐버린 앤드루를 증오하지만, 그 앤드루가 완벽한 예술가가 된 것에 놀라움을 느끼고
앤드루는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플래처를 혐오하지만, 그 플래처로 인해 찰리 파커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플래처의 담금질 속에서 앤드루는 삶을 버리고 예술을 선택하는 스토리인 것입니다.

 

3. 마치며

과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현실과 예술은 공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시는가요?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서장훈씨가 말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그거는 순전히 개뻥이에요.' 이런 비슷한 맥락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즐기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무책임하게 즐겨라 라는 말을 하기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겠지요.

이 영화에서는 이런 점을 시도때도 없이 보여줍니다.

현실과 예술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앤드루. 

그런 앤드루를 보며 그렇게까지 안해도 된다고 말하는 아버지(현실).

하지만 앤드루에게는 이미 예술쪽으로 동화되었고 현실을 조금씩 포기하게 되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이 옳은지.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과연 플래처 교수의 수업 방식은, 교육 방식은 옳았던 것일까?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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