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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쇼생크탈출이라고 제목이 지어졌지만, 

사실 영화의 제목은 쇼생크 탈출이 아닌 쇼생크 구원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어떤 구원의 말을 하고 있었을까요?

 

1. 성경구절

영화 속에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대사가 눈에 띄게 있습니다.

교도소 소장 노튼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요한복음 8장 12절.

그가 영화에서 어떤 인물인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예수가 자신이 빛이라고 선포하는 구절입니다.

그는 쇼생크 사람들에게 예수 혹은 신과 같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소장 노튼은 규율과 성경을 중요시 생각합니다.

쇼생크의 정점에 있는 권력자이자 교황이며 신입니다.

그의 규율을 따른다면 사람들은 쇼생크 안에서 그 나름대로의 안식을 얻게 될 것 입니다.

 

이에 반대로 앤디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원래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지, 밤 중일지, 닭이 울 때인지, 새벽일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영화에서 앤디는 이 구절을 전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는 명확히 말한 후 뒷 구절은 얼버부립니다.

앤디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이 구절 자체가 아닌 이 구절의 앞부분 '깨어있으라'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수감자들은 쇼생크의 법과 규칙에 순응한채 자유와 희망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몇 십년의 세월에서 교도소 안에서 깨어있는 유일한 인물은 앤디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깨어있다' 라는 말은 정확히 무슨 말일까요.

 

2. 실존주의

인생은 탄생(B)와 죽음(D) 사이에 선택(C)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실존이기 때문에 의지와 선택으로 삶의 본질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여기서 실존이란 있는 것을 의미하고

본질이란 그 있는것에 쓰임새나 목적을 말합니다.

인간은 목적(본질)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본질이 정해져 있지 않은 자유로운 인간은 개개인의 본질을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쇼생크의 사람들은 인생의 본질을 만들어내는 'C' 선택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밥먹는 것도, 소변을 보는 선택도 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쇼생크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본질을 만들어낼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여기서 유일하게 선택하는 사람이 앤디입니다.

앤디는 수감자들에게 맥주를 마시게 하고, 돌을 깎고, 도서관을 짓고, 음악을 틀기도 하며

쇼생크 안에서 본질을 선택할 자유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선택합니다.

 

앤디는 그가 좋아하는 구절처럼 영화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본질을 찾아내려고

항상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앤디의 취미가 조각인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돌은 선택할 수 없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돌은 교도소에 있는 수감자들을 표현합니다.

수감자들은 규율때문에 그들의 본질이 일방적으로 정해집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앤디는 본질이 정해져 있는 돌을 조각해서 그 본질을 다양하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같은 의미로 앤디는 수감자들이 본질을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맥주를 통해, 음악을 통해, 교육을 통해,

그는 수감자들이 죽어있는 돌이 되지 않고 각각의 본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도와줍니다.

마치 본질이 하나로 정해진 돌을 조각해서 다양한 조각품을 만들어낸 것과 같이 말입니다.

 

영화는 원래의 제목처럼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표현합니다.

교도소에서 탈출한 앤디는 구원이 성경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앤디는 성경에서 희망을 찾아 구원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닌

성경 속에 숨겨둔 암석 망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망치는 자유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작은 희망입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자유가 생기고

자유가 생기면 선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선택을 하게 된다면 인간의 본질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인간의 본질을 만들어내면 인간 실존의 회복. 즉 구원이 됩니다.

자유를 만들어 낸 이 작은 망치는 작은 희망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사르트르 실존주의를 아시나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는 신과 성경에서는 구원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신이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연필, 가위와 같은 것들은 모두 목적이 있기 떄문에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신이 있다면 인간에게도 본질이 있어야합니다.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졌어야 하기 떄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르트르는 인간의 구원을 신에게서 찾지않고 개개인의 자유와 선택에서 찾습니다.

 

이렇듯 영화에서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많이 녹아내려 있습니다.

3. 카메라 연출

영화를 자세히 보다보면 빛과 어둠을 이용한 장면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브룩스가 철창 밖으로 나올 때와 레드가 철창 밖으로 나올 때가 다르듯이 말입니다.

내용상으로는 교도소를 나오고 있지만 브룩스가 나올 때의 화면에서는 철창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의 몸은 구속을 벗어났지만, 그의 정신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찾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브룩스는 교도소를 나왔지만 그는 철창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사회라는 또 다른 철창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레드의 경우에서는 화면에 철창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듯 레드와 브룩스는 비슷한 처지지만 화면은 미묘하게 다른 표현으로 둘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레드는 실존과 본질의 끈을 조금이나마 잡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모니카 소리에 있습니다.

앤디는 영화에서 희망과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음악을 끌고

음악으로 표현되는 희망에 대해 더 이야기합니다.

음악과 희망을 잊고 살던 레드에게 그 희망을 잃지 말라는 듯이

앤디는 과거에 레드가 불었다는 하모니카를 선물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하모니카를 아주 작게 불러봅니다.

 

레드의 희망과 자유는 이 하모니카 소리처럼 아주 작고 미미하지만 끊어지지는 않습니다.

 

또한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카메라 연출도 있습니다.

바쁘게 살지 바쁘게 죽을지를 결정하는 앤디와 레드의 대화 장면입니다.

누가 그림자에 있고 누가 빛에 있는지 기억하시나요?

앤디는 이미 그 결정을 내리고 그림자에서 나와 빛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레드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사회를 나가서도 그 사이를 고민하게 됩니다.

 

영화에서 새는 자유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카메라의 시선은 새처럼 바라보듯 향합니다.

영화 초반 자유로웠던 앤디가 쇼생크로 들어오는 시점에서도, 자유를 느끼게 하는 노래가 나올 때도,

자유를 상징하는 바다가 나올 때도, 자유를 얻은 두 사람을 마지막에 비출 때도,

하늘에서 그들을 내려다 봅니다.

이렇듯 새, 하늘, 하늘에서 바라보는 카메라는 자유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앤디가 자유를 잃고 쇼생크로 들어올 때는 카메라가 땅에서 하늘을 비추다가

점점 쇼생크의 어둠에 가려집니다.

 

4. 마치며

이 영화는 명작이라고 불리우는 것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스토리가 재밌어서가 아닌, 모든 장면과 대사 하나하나마다 그 연출과 이유가 있으며,

그것을 알아내는 재미와 해석하는 부분이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영화의 표현까지도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

안보신 분들은 진짜로 꼭 한번 보시길 추천드리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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