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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리뷰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입니다.

1. 줄거리

꼬리칸 사람들은 처음부터 티켓을 사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위한 자리는 처음부터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설국열차는 꼬리칸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화물칸을 내어주고
모자라긴 하지만 물과 음식도 내어줬습니다.
이뿐이 아니라 설국열차는 이들에게 직업도 줬습니다.
하지만 꼬리칸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따뜻한 음식과 물 풍족한 삶을 바라면서 머리칸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집니다.
꼬리칸 사람들은 정당하게 탑승한 승객들과 직원들을 살인하고 열차를 정복하고 기존에 확립된 계급을 뒤집어 엎으려 합니다.

만약에 혁명이 성공한다면 머리칸 사람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하거나 꼬리칸으로 밀려날 겁니다.
머리칸 사람들 입장에서 꼬리칸 사람들은 도움이 될게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꼬리칸을 따로 분리하거나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뒀을까요?
이 모든것은 '열차의 균형' 때문이었습니다.

 


2. 꼬리칸의 필요한 이유


a. 인력문제의 해결
설국열차의 직원들은 무한하지 않았습니다.
혁명이 일어나고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면 열차의 직원들도 그만큼 감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엔 앞 칸 승객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열차의 유지 보수를 위한 노동자수가 감소하게 됩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머리칸은 인력이 필요할 때마다 꼬리칸에서 뽑아서 썼습니다.
영화 초기에 나왔던 바이올린 연주자가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메이슨도 원래는 꼬리칸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칸으로 넘어가 출세한 인물이죠.
이처럼 꼬리칸은 열차의 인력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이 되었습니다.

b. 열차의 부품
영원할 것이라 여겨졌던 설국열차의 부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마모되어지고 끝내는 멸종되기 까지 합니다.
마모된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선 대체품이 필요했고, 이 대체품이 꼬리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필요했던 곳이 바로 단백질블록 생산칸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자동으로 작동했지만 이제는 사람이 직접 레버를 돌려야지만 작동했던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엔진룸입니다.
열차의 가장 중요한 엔진룸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했던 것이었죠.
엔진룸의 멸종한 부품을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은 바로 조그마한 크기의 어린아이들 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머리칸의 어린이들에게는 이런 일을 시킬 수는 없었기에
그래서 꼬리칸 아이들을 이용하게 됐던 것입니다.

열차를 설계한 윌포드는 이런 꼬리칸의 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저 열차를 위한 물건처럼 생각했습니다.

c. 인구의 균형

꼬리칸 사람들의 반란은 모두 윌포드와 꼬리칸의 길리엄의 계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 역시 열차의 균형을 위해서 였습니다.
'폐쇄된 생태계인 열차에서 균형은 필수야, 최상의 균형을 위해서 가끔씩은 과감한 해결책이 필요하지.
그렇다고 늙어죽기만을 기다린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사람이 넘쳐 다들 굶어 죽게 될걸. 그래서 폭동이 필요한 것이지'

열차 안에 식량의 양은 정해져 있기때문에 열차의 적정 인구를 유지하는 것은 필수였던 것입니다.
기차의 인구수가 일정 선을 넘어가면 수많은 인구가 굶어죽게되겠죠.
윌포드가 계획한 폭동은 꼬리칸, 앞칸의 인원들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죽는 사람은 안타깝지만 쾌적한 열차내 환경을 조성하는데 일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폭동은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의 인구론'과 내용이 똑같습니다.
인구를 줄이기 위해 폭동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윌포드는 꼬리칸을 이용해 열차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d. 열차 분위기 환기
꼬리칸의 혁명은 열차내에서 최고의 이벤트 입니다.
물론 매우 나쁜쪽으로 말이죠.
설국열차 개봉 당시 봉준호 감독은 '열차에서의 반란, 폭동은 대략 5년 주기로 한 두번씩 있었고, 이것은 나름 지겨운 기차생활 속 하나의 이벤트였다'
라고 말했습니다.
영화에서 꼬리칸 사람들과 대면하며 생선의 배를 가르는 것이 바로
이들에게 혁명은 축제의 시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e. 우월감
꼬리칸 사람들은 결국 앞칸과 중간칸에 있는 사람들의 우월감과 만족감을 주게 됩니다.
만약 열차에 꼬리칸 사람들이 없다면 중간칸의 직원들이 꼬리칸 신세가 되었겠죠.
만약 열차에 앞칸 사람들 밖에 없었다면 앞칸 승객들도 본인들끼리 비교하다가 싸움을 했을지도 모른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자신을 높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자신들보다 못난 사람들이 꼬리칸에 있다면 어떨까요.
앞칸, 중간칸 입장에서는 '꼬리칸 보다는 우리가 훨씬 낫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꼬리칸이라는 열당한 칸의 존재덕에 앞칸과 중간칸을 포함해 현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꼬리칸은 아무런 것도 하지 않은 듯보이지만, 열차의 체제를 유지하고 균형을 수호하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꼬리칸 입장에서는 머리칸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충분한 양의 물과 음식이 있으면서 나눌 줄 모르며 자신들을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머리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을 내고 티켓을 구매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적법한 절차를 밟아서 열차에 탑승했습니다.
윌포드는 그 티켓의 값으로 무한동력엔진, 무한생태계의 설국열차를 제조하게 되었습니다.
설국열차의 지분은 당연히 돈을 지불한 사람들의 것이었던 것입니다.
머리칸 사람들은 열차 안의 모든 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맛있는 음식과 술, 편안한 잠자리, 놀거리 및 교육시설까지
이들이 구입한 티켓에는 이들이 누릴 서비스까지 포함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열차의 직원들은 티켓을 구매한 머리칸 사람들을 위해 노동하는 것입니다.

직원들이 꼬리칸을 위해 일 하는 순간
머리칸 사람들은 서비스를 받지 못할테니까요.
이처럼 설국열차는 머리칸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에
꼬리칸 사람들은 당연히 안 좋게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머리칸 사람들 입장에서는 목숨도 살려주고 먹을것과 직업도 주는데 어떤 것을 더 요구하는지 어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꼬리칸 사람들은 만족하지 않고 더 풍족한 물과 음식을 바라면서 머리칸으로 나아가려고 시도합니다.
꼬리칸 사람들은 정당하게 탑승한 승객들과 직원들을 살인하고 열차를 정복하여 기존에 확립된 계급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머리칸 사람들은 꼬리칸 사람들이 지배하게 두려고 하지 않겠죠.

 

3. 그렇다면 누가 옳은걸까?


열차 내의 불평등은 부당하다면서 머리칸 사람들이 꼬리칸 사람들을 도와야하는 것인지,
머리칸 사람들은 돈을 주고 정당하게 탑승한 것이기 때문에 부당한 것은 없다는 이야기인지 말입니다.
과연 그렇다면 누가 옳은걸까요?
여기서 많은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머리칸에서 남는 음식을 조금만 나눠준다면 머리칸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은 조금 줄어들 수 있어도
꼬리칸 사람들은 엄청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밴덤의 공리주의'와 같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의견도 있습니다. 부자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은 그들의 기본권 자유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
머리칸 사람들의 음식을 모두의 동의 없이 가져가는 것은 강압 행위이며 그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은 개인이 하는 일이지 정부가 강제로 할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실까요.
그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는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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